최근 독일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공휴일을 줄이자’는 주장이다. 쉬는 날 줄이자는 말은 직장인들에게 즉각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주제지만, 독일이 이처럼 과감한 주장을 꺼내든 배경에는 절박한 경제 상황이 있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독일은 노동력 부족, 저출산, 국방비 확대라는 세 가지 과제 앞에서 기존의 느슨한 노동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휴일 하루 줄이면 GDP 14조 증가”…숫자가 말해주는 경제 효과
독일경제연구소(IW)는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공휴일 하루를 줄이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86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3조7000억 원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계절과 산업별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하루 더 일하면 독일 경제가 최소 50억 유로 이상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을 제외하면 공휴일 축소의 생산성 증대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독일 연방정부 경제정책자문위원장 모니카 슈니처는 “덴마크가 공휴일을 하루 줄여 정부 수입을 4억 유로 늘렸다”며 독일도 같은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덴마크는 지난해 국방비 확충을 위해 부활절 이후 네 번째 금요일인 '대기도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바 있다.
“독일, 일 너무 적게 한다”…노동력 감소가 불러온 위기감
독일의 공휴일 축소 주장은 단순한 경제 효과 예측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구 구조 변화도 핵심 원인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출산율은 줄어들면서 노동 인구는 빠르게 감소 중이다. 이에 대해 IW의 선임연구원 크리스토프 슈뢰더는 “앞으로는 ‘적게 일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할 사람이 없는’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독일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343시간으로, OECD 평균(1742시간)은 물론 영국(1524시간), 프랑스(1500시간)보다도 적었다. 병가도 평균 19.4일에 이르는 등 노동환경이 매우 유연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더 하자’는 주장이 정치권과 산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휴일 없애면 국방비와 인프라 투자 재원 확보 가능?
독일 정부는 현재 5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투자 기금을 조성하고 있으며, 국방비 확충이라는 또 다른 큰 재정 과제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공휴일을 줄여 GDP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자”는 현실적인 접근이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인 재정 확대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IW의 슈뢰더 연구원은 “공휴일 폐지는 단순한 하루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간 증가 논의를 시작하는 ‘상징적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의 반발: “공휴일은 사치가 아니라 생산성의 원천”
그러나 독일 노동계는 공휴일 축소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노조총연맹(DGB)은 “공휴일을 없앤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휴일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재충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노동계는 공휴일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공공서비스노조 베르디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공휴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니더작센 주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독일은 주정부가 공휴일을 정할 수 있어, 현재 베를린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에서는 여성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독일의 공휴일 논쟁은 단순히 ‘더 일하자’는 주장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배경에는 인구구조의 변화, 재정 부담의 증가, 느슨해진 노동문화에 대한 성찰이 함께 있다. 무엇보다 이 논의는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쉴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가치 판단의 문제다.
한국의 상황은 정반대다. 공휴일이 상대적으로 적고, 노동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낮은 편에 속한다. 결국 중요한 건 단순한 ‘노동시간의 양’이 아니라, 일의 질과 효율성, 그리고 건강한 노동-휴식 균형이다. 독일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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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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