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비밀을 읽던 자들…조선의 '사주 교수' 이야기
조선시대에도 사주팔자 전문가, 즉 명리학자는 존재했다. 그들은 단순한 점술가가 아닌, 왕실의 혼사와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명과학 교수’**였다. 중인 신분이었지만, 이들은 왕자와 공주의 궁합을 보고 결혼 날짜를 정하며, 궁궐 내 중요한 행사들의 길일을 택하는 역할을 맡았다. 권력의 중추부에 있는 비밀정보를 다루는 전문가였던 것이다.
명과학은 잡과 과목 중 하나로, 3년에 한 번, 2~3명 정도만 선발하는 희귀한 과거였다. 이들이 선발되면 왕실에서만 일하며 퇴직 후 민간 개업은 금지되었다. 그만큼 왕실의 내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반란 사건에 명리학자가 연루돼 처벌받은 기록도 많다. 누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팔자’를 가졌는지를 아는 자는 자연히 정치적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명리학의 중심은 이북이었다. 조선시대 서북 지역 출신들은 고위직 진출이 제한돼 있었기에, 중인 과목인 명리학·한의학·풍수지리에 몰입했다. 이 전통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6.25 전쟁 후 이북의 명과학 고수들이 부산으로 피난하면서 부산이 역술계의 메카가 된 역사적 배경을 만든다. 그 후 ‘진짜 역술가’는 부산에서 도장깨기를 해야 한다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이 칼럼을 통해 조용헌 교수는 단순히 ‘미신’으로 폄하되곤 하는 명리학의 역사적 맥락과 그 사회적 무게를 조명한다. 왕실의 결정까지 관여했던 명과학 교수는 단순한 점쟁이가 아니었다. 역사 속 정보전과 권력 다툼의 한 축이었다. 그들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사주 명당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